세월호 1주년을 맞아 밀양의 할머니들이 유가족들께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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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1주년, 밀양 할머니들이 유가족들에게 드리는 편지>




 


오늘 저녁 평밭마을에서 뜻깊은 모임이 있었습니다.
성공회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신부님들이 밀양 송전탑 현장을 출발하여 도보로 팽목항까지, 꼬박 열하루를 걸어서 4월 16일 현장에 도착하는 순례를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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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자리에서 아픔의 자리로 가는 순례길에, 밀양 어르신들이 세월호 유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신부님들은 그 편지를 들고 순례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그 출발의 자리에서 편지를 함께 읽었습니다.

 


<1주년을 맞아 팽목항으로 띄우는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희는 밀양 송전탑을 막기 위해 지난 10년간 싸워온 밀양의 할매 할배들입니다. 세월호 1주년을 맞아 성공회 신부님들이 저희 밀양 송전탑 현장을 출발하여 팽목항으로 떠나는 순례길 편으로 저희의 편지를 띄웁니다.


 


작년, 416일 세월호 참사가 나던 날, 저희 밀양 주민들은 네 곳 철탑 현장에서 이미 계고된 행정대집행을 막기 위해 움막 농성 중이었습니다. 그때, 뒤집힌 세월호와 뱃속의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매주 한 번씩 두 달 동안 네곳 움막에서 아이들의 넋을 기리며 촛불을 들었지요.


 


<등대지기>를 부르며 이 아이들이 이 엉망진창의 나라를 비춰주는 등대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두 달 뒤, 6.11 행정대집행으로 현장에서 잔혹하게 진압당하고 끌려나왔습니다.


 


지난 11, 준영이 어머니 아버지가 저희 밀양을 찾아 유가족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작년, 1216일 저희가 세월호 안산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그날 저희 주민분들과 어머니들이 함께 얼싸안고 눈물 흘렸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희들은 10년간 싸워왔고, 끝내 경찰 공권력에 밀려 현장에서 들려나오고 철탑이 다 세워지고 생존권을 빼앗겼지만,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분들의 아픔에 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희들은 매주 한 번씩 하는 촛불문화제 때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함께 낭독합니다. ‘다이빙 벨이라는 영화도 함께 보기도 했고, ‘세월호를 향한 기억 투쟁이라는 다큐멘터리도 함께 보았습니다. 밀양의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렇게 조금씩 세월호를 알고 배워가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저 어이없는 막말들, 돈으로 죽음을 덮으려는 잔인한 폭력, 저희도 10년간 여론의 무관심과 한전과 정부의 냉대와 폭력을 고스란히 겪어서 그 분노를 조금이나마 짐작합니다.


 


생존권을 빼앗긴 저희들의 마음이 국가와 가진 자들에게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지, 저희들의 마음이 얼마나 전해질지, 저희들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 밀양의 주민들이 함께 하고 싶어하는 간절한, 그리고 뜨거운 사랑의 마음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미 철탑이 다 들어섰지만, 우리는 이 싸움의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워 핵발전소를 멈추고 철탑을 뽑아내기 위해 싸웁니다. 세월호의 진실, 세월호의 정의가 밝혀져야만 어머니 아버지들도 자식들을 가슴에 묻을 수 있겠지요. 세월호 엄마 아빠들의 아픈 마음과 저희들이 다시 언제라도 만날 수 있을 날을 기도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 모두 기운내서 함께 손을 잡고 이 캄캄한 나라에서 촛불을 들고 함께 싸워나갑시다. 모두, 존경하고, 또 사랑합니다.


 


201545일 팽목항으로 떠나는 순례자들 편으로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 드림



 


<밀양의 할머니 두 분께서 전해주신 메시지>


 


 


세월호만 생각하믄 애가 탑니더. 애가 타요. 지난 번 촛불집회 때, 준영이 엄마 아빠 내려왔을 때 우리집에서 잘라캤는데, 일이 있다 캐서 못자고 갔어요. 방에 불도 넣어놓고 요도 깔아놓고 다 했는데 못자고 가서 참말로 아쉽습니더. 그 때 촛불집회 때 준영이 엄마 아빠 얘기 듣고 거기 있는 그 많은 사람이 얼매나 많이 울었는가 몰라요.


 


 


그 때 안 울은 사람 없어요. 그 때 우리가 (준영이)는 그래 가고 없지만은, 딸아(준영이 동생) 봐서 힘내가 살아야 된다.”고 말했었습니더. 준영이 엄마, 아빠, 세월호 유가족 부모님 모두 그 맴을 우예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르겄지만... 남은 아()들 봐서 힘내가 살아야 합니더. 배도 빨리 건지고, 못 찾은 아()들도 찾고, 그 아()들 왜 그케 되았는지 꼭 알 때까지 힘내입시더. 할매도 기도하꾸마.


- 밀양시 상동면 도곡마을 김말해 할머니(87)


 


자녀를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말을 다해. 자녀 가슴에 묻어서 죽어져야만 가는 긴데. 자녀는 또 잃었뿠지만은, 나머지 남은 자녀를 용기를 주고 힘을 줘서 엄마가 힘을 내야, 그 자녀가 힘을 얻는다 아이가.


 


나도 말할라카먼 목이 매여서 말이 안 나오는데. 가슴이 아프고, 죽는다면 우예라도 하겠는데 안 죽은다먼 눈 깜아야 잊아뿌는데, 눈 뜨고 살면 잊아뿔수가 있나.


 


우떻게든 잊아뿌리고 자기 남은 자녀를 생각해서 가정을 생각해서 먹기 싫은 밥도 억지로 먹고 용기내라 카소.


 


부탁이라 캐봤자 그 부탁 밖에 할 게 없다... 부탁하면 머하노.. 무슨 소리해도 그 사람들 귀에 말이 안 들어와. 그 중에 (자식 시신을) 못 찾은 사람은 우째서든 배를 끌어올리서라도 찾았으면 좋겠구마.


 


떨리서 이야기를 더 못하겠네요. 무슨 말을 하겠심니꺼. 기운차리고, 기운 채리야지.


- 부북면 위양마을 덕촌댁 할머니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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